지고 싶은 날이 있숩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도 종 환

무릅 끓고 싶습니다.
음악이 너무 가슴에 사무쳐 볼륨을 최대한 올려 놓고
그 음악에 무릅 끓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깃발위에 백기를 달아 노래 앞에
투항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에 항복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싶은 저녁이 있습니다.

자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왔기에
너무 긴장 하며 살아 왔습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너무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보니
사랑 하는 사람 가까운사람
제 피붙이 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며 삽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이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건데
절대로 지면 안되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오래 되였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 주고 싶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릅 끓고 싶습니다.